카테고리 없음2009. 12. 18. 02:42
이건 그러니깐 꽤 오래전, 지금은 결혼한 언니가 첫 연애를 시작했을때 이야기에요. 대학생이 된 언니는 가족들과 떨어져 살게 되었고 그 파릇하던 새내기 봄에 캠퍼스 커플이 되었어요. 그다지 살뜰한 자매사이가 아닌지라 언니의 연애사가 어땠는지 나는 잘 알지 못해요. 하지만 내가 몇달만에 언니를 보러 서울에 왔을때 - 아마도 리나팍의 공연을 보기 위해서인데. 이것도 언니가 당시의 남자친구와 (aka. 형부ing) 보려고 샀다가 일정이 맞지 않아 어쩔 수 없이 남는 표를 구제하러 내가 출동했던거 같아요. 리나팍을 몹시나 좋아했던 나에게는 감동적인 공연이었지만 언니는 그 공연을 보면서 졸았었죠. 때로는 어떤 공연을 보느냐보다 누구와 함께 보느냐가 더 중요한 경우가 많지요 - 그때의 언니와의 만남을 난 기억해요.
우린 애틋한 자매사이가 아니었어요. 네시간 거리의 나를 부른것도 표를 버리자니 아깝고 갑자기 팔자니 안팔리고 마땅히 표를 기부할 친구가 없어서였을거에요, 아마도. 근데 오랜만에 만난 언니는 많이 변해있었어요. 지금껏 언니에게 한번도 그때 일에 대해서 말한 적 없지만 나는 그 충격적인 사건을 생생하게 기억하거든요. 언니는 지하철을 기다리면서 계속 내 얼굴과 한뼘정도의 거리를 유지하면서 공연장에 어떻게 가는지에 대해 설명했던거에요. 손이 좀 큰편인 나에게 한뼘, 약 20cm. 얼마나 가까운 거리인지 알겠어요? 난 그 전 십 몇년간 언니와 그 정도 가까운 face to face를 유지한적이 없었다구요. 그때 내 반응은 어 뭐야 언니 이상해 정도였던걸로 기억하는데 나중에 생각하니 알겠더라구요. 언니는 연인과의 거리감에 너무 익숙해져있던거에요.
그 당시의 나는 연애를 해본적도 없었고 나와 상대의 섹슈얼한 느낌을 철저하게 배제하고 사람을 대했기때문에 (그때 알고지내던 나이많은 남자사람은 전부 형이었어요) 그런 연인스멜을 못견디고 언니 이상하다며 뒷걸음질을 쳤었지만 지금이라면 엄마미소를 지으며 언니를 바라볼 것 같아요. 이건 사랑에 빠진 사람의 거리감이구나 하고 말이에요. 아, 이제와서 언니가 그런 새로운 눈빛을 쏴대면 안되는건가요.

사랑에 빠진 사람은 눈빛만 봐도 알 수 있어요. 뭘 바라보든 항상 눈동자가 하트모양이 되어있죠. 연애를 한다고 항상 그 하트모양의 눈동자를 가지게 되는건 아니에요. 사랑에 빠져야하죠. 완벽하게요.

근데요 오늘 말이에요. 내가 그런 눈빛을 누군가에게 보냈던 것 같아요. 원래 그렇게 상대의 눈을 빤히 쳐다보느냐며 몇번이나 서로 어색해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거더라구요. 아아, 오늘의 내 눈빛은 그때 언니가 나에게 보였던 그거였던 거에요.
사랑에 빠진 눈빛일까요, 아니면 사랑에 빠진 사람의 습관적인 눈빛일까요. 혹 습관적으로 사랑에 빠진 사람의 눈빛일까요. 모르죠, 오늘 난 10년전의 나와 사랑에 빠진건지도 몰라요.

Posted by bid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