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2012. 7. 7. 21:55

iphone4, istanbul, 2012여름


사실 그렇게 급하지 않아도 되고 서두를것도 없는건데.


이 도시에서만 3주의 체류가 길다고 생각했었는데 막상 지내며 보니 그닥 시간이 많지 않은거다.

힘든 스케줄 덕에 체력도 바닥나고.


계속 짐을싸고, 숙소도 제대로 못잡은채 밤버스 타고 떠도는 생활에 지칠때쯤

안락한 호텔과 제공되는 각종 편의들은 나를 충분히 게으르게 만들어버렸다.

여행하면서 영어로 힘든적은 없었는데 막상 수업을 시작하니 생각보다 높은 벽에 심리적으로 지쳐버리기도 했고.

내가 지금 이 돈 내면서 여기서 뭐하는 건가도 싶었다.


더이상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서

'여행중이야?'

'어느 나라에서 왔어?'

'어디 여행했니?'

'다음엔 어디가?'

'학생이야?'

'전공이 뭐야?'

이런 질문을 주고 받는것도 지겹고.


새로운 사람과의 관계맺음을 '들이댐'으로밖에 표현 못하는 터키 남자들도 지치고

외국인, 특히 동양인을 '신기함'으로만 생각해서 뭐랄까. 사람보다는 외국인으로만 대해주는 그런것도 지치고

같이 수업듣는 미국애들의 무한체력에도 지치고

박물관이고 자미고 이도저도 다 지쳐버렸는데


그러고보니 정작 블루모스크 내부를 안들어가봤구나.

카페트에서 은은하게 풍겨오는 발냄새들을 만끽하며 구석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는데

여느때처럼(?) 함께 사진을 찍어달라는 요청이 들어온다. 이번엔 아빠랑 3살, 6살쯤 되는 딸들이다.


여기 애들은 유난히 인형같이 이쁜데.

양쪽으로 쪼르르 달아들어서 좀 더 큰아이가 팔짱을 껴달라길래 껴주고

어정쩡하게 서있는 꼬맹이 어깨를 안아줬더니 고대로 품안에 쏙 안긴다


그때 그 느낌이 짜릿하고 너무 좋아서 갑자기 '아 터키에 너무 잘왔구나' 싶었다.



한 이십분 전부터 내 옆에 앉아있던. 얘도 발 탄거 보니 여행자구나 싶었던 키가 180은 되어보이는 여자아이가

multi culture라며 웃으며 말을 걸어온다.


각자 수십번은 주고 받았을 식상한 질문들로 통성명을 하고

오후 내내 궁금했던 질문을 던졌다. 너는 여행을 왜하냐고..


얘는 남자친구랑 여행을 하고 벌써 국경 네개를 히치를 해서 넘어왔다는데 새롭고 아름다운 것들을 보고 경험하는게 좋단다.

영화를 배우는 아이인데, 그게 자기를 inspire한대.


이럴때면 inspiration이고 뭐고 얄짤없는 내 전공이 좀 한스럽긴 하지만

여튼 그래서 여기 지금 이렇게 앉아있는거니깐.

새로운 에너지를 어디에 쓸지 고민해 보아야지.



그렇게 블루모스크에 가서 조금은 졸고, 귀여운 꼬마아이를 안아주고, 키 큰 여자아이를 만나고

다시 힘을 얻어서 돌아왔다.




Posted by bidy